커퍼스 용산센터, 라이언스커피로스터스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분방한 커피

주입식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원리와 과정을 배제한 채 결과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나중엔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기 보다는 정답만을 따지게 된다. 이러한 교육은 한동안 커피에서도 문제가 됐었다. 추출이든 로스팅이든 방법만 강조하다보니 ‘커피는 ~해야 한다’ 라는 생각에만 얽매였던 것이다. 정해진 틀을 벗어날 수 없으니 그 이상 발전하기란 기대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커피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들이 온오프라인으로 활발하게 보급되면서 커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커피인들이 많아졌다. 생각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과거에는 용인되지 않았던 개념이나 방법까지도 다양성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는 요즘이다. 이제 커피에는 정답이 없는지도 모른다. 커퍼스 용산센터 라이언스커피로스터스(Ryans Coffee Roasters)를 찾았다.

글&사진 강승훈(프리랜스 기자)

 

커퍼스 센터 취재 건으로 2016년 4월 온라인커피매거진 블랙워터이슈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 중 현재 라이언스 커피 로스터스 운영 내용과 상이한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나만의 ‘브랜드’를 꿈꾸다

라이언스커피로스터스(이하 라이언스커피)의 노영준 대표가 커피를 만난 곳은 호주였다. 호주는 일본에 이어서 두 번째 워킹홀리데이로 떠났던 나라였다. 호주에는 영국식 문화가 남아 있는데, 바로 티 타임이다. 노 대표는 티 타임 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커피를 접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노 대표는 커피를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아메리카노보다는 라떼 류의 커피를 선호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였다. 용돈이 필요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커피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커피에는 기본적인 룰과 공식이 있었지만 정답은 없었다. 최적의 커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매력을 느꼈고, 커피를 알아갈수록 재미도 커졌다. 로스팅을 배우면서 결과물을 맛보고 확인하는 행동에도 흥미를 느꼈다. 특히 향미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초콜릿 맛이 난다는데 왜 그런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물었더니 설명을 못하더라구요.” 현상에 대한 원인을 알기보다는 마치 정답을 외우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형화된 교육 탓이었다. 로스팅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가체프의 투입온도나 로스팅 시간, 배출 시간 등이 모두 정해져 있었다.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지식이었고 경험이었다. “궁금했죠. 그래서 온도나 시간이 되기 전에 먼저 배출하면 어떻게 변하는데?, 하고 말이죠.”

 

| 커피와 관련된 노 대표의 왕성한 행보를 엿볼 수 있는 장면

 

결과물을 놓고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때, 커피 향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큐그레이더 길드(커퍼스 전신)였다. 길드 모임을 통해 커핑을 접하고 교육도 받으면서 향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했고, 본격적으로 커피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노 대표가 커피인으로 진로를 결정한 것은 큐그레이더를 따면서였다. “예전에 막연하게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어요. 죽을 때까지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있는 일, 여행도 중요해서 언제든지 해외로 나가면서 할 수 있는 일, 또 외국어도 하고 싶었죠. 커피를 만났는데 이런 바람과 맞는 부분이 많았어요.”

커피인이라는 막연한 진로는 점차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커피헌터라는 직업을 들었는데, 그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될 수 있는지 가이드라인 같은 게 없었죠. 고민을 하다가 나름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생두회사에 취직하던가, 아니면 직접 산지를 다니거나…” 노 대표는 창업을 택했다. 같은 10년이라도,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내 것을 만들어서 시작하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작은 공방이었다. 매장에서 커피를 팔기보다는 원두제조업을 기반으로 커피 지식을 공유하거나 교육하는 장소였다. “그때만 해도 큐그레이더에 대한 정보가 부족 했고,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어요. 큐그레이더를 따면서 그 다음으로 제가 할 일을 보게 된 거죠.”

 

| 얼마 전 오픈한 라이언스커피로스터스 2호점. 4호선 숙대입구역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소비자를 위한 공간에 초점을 맞췄다

 

처음에는 커피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1일 세미나를 진행했다. 세미나는 점차 주기적으로 이뤄졌고, 나중에는 아예 정규과정으로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커퍼스 모임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얻은 노하우와 지식을 바탕으로 세운 뼈대였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3년 동안 노 대표는 교육과 세미나, 제조업을 병행하며 첫 매장을 운영했다. 그리고 2014년 말, 갈월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새로운 시기를 맞고 있다.

공방이라는 콘셉트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성격은 조금 달라졌다. “예전처럼 공방만 운영하는 형태론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제조, 납품 쪽에선 이미 단가싸움이 시작됐거든요. 외부에서 더 큰 자본이 들어와 커피 값을 좀 더 싸게 풀어버리면 저희 같은 소규모 업체들은 당장이라도 위험해질 수 있어요.” 사실 이런 단가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과거부터 안정적인 운영을 해오던 중소업체들이 덩치를 키워가며 대규모 제조업체로 탈바꿈했다. ‘규모의 경제’를 내세우며 단가하락을 주도했고, 자금력에서 열세인 소규모 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 매장 운영은 중장기적으로 수익을 보전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샌프란시스칸 로스터기

 

하지만 노 대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해법은 ‘브랜드’이다. 여기서 브랜드는 커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쌓으며 인사이트를 발휘할 수 있는 ‘차별화’를 의미한다. 노 대표의 활발한 외부활동은 결국 ‘라이언스커피’라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 다녀온 콜롬비아 안티오키아에서 겪은 경험들은, 노 대표가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해외활동의 가능성을 마음먹게 했다. “무엇을 해야할 지 구체화 됐다고 할까요?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는 일에서부터 얼마나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어떻게 하면 커피의 품질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지, 커피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마침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였는데, 정말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커피는 쉽고 편하게… 하지만 기본과 원칙은 지킨다

‘Just Simple’. 노 대표의 커피 스타일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쏟아내며 지적인 권위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지향한다. 커피 마니아층이 두터워지기 보다는 대중적인 홈카페의 저변이 넓어질 필요가 있다고 한다. 또한 커피에 대한 지식과 정보 역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비밀스럽지 않게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는 게 중요해요. 커핑이든 세미나든, 오픈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내 것을 오픈 했을 때 스스로 더 노력해야 해요. 물론 힘들 때도 있고, 밥줄이 끊기는 건 아닐지 걱정도 해요. 하지만 더 나은 것을 찾기 위해선 내 것을 놓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성장을 위한 일종의 ‘배수의 진’인 셈이다.

 

 

‘쉽고 편하게’ 라는 그의 모토는 간혹 형식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인다. 드립포트가 아닌 전기포트로 핸드드립을 시도한다던지, 모카마스터에 귤 껍질을 던져놓고 추출해 시트러스 향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기본과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커피와 물의 비율, 온도, 시간 같은 최소한의 기본은 지키되 방법적인 부분에서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노 대표는 자유롭게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간혹 어떤 이들은 노 대표의 스타일에 불만을 내비치기도 하지만, 결과물에 대한 그만의 뚜렷한 기준과 탄탄한 기본기 때문에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매장에서 판매하는 ‘라이언스커피’ 메뉴는 이러한 캐릭터가 가장 잘 드러난다. ‘오늘의 커피’와 성격은 비슷한데, 가격은 고작 2,500원 밖에 하지 않는다. 3,500원인 아메리카노보다 싼 가격이다. 가격에 맞게 사용하는 커피가 다른 것도 아니다. 날마다 커피가 바뀐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매장에서 판매하는 커피와 다르지 않다. COE이나 스페셜티커피 같은 것도 리스트에 들어간다. “한 잔 마실 걸 두 잔 마시게 하자. 중독 시키는 게 취지였어요.” 좋은 커피를 싼 값에 즐길 수 있으니 점심 직후 같은 때엔 주문이 몰리기 마련이다. “드립에 대한 편견은 없어요. 콩의 품질이 좋다면 결과물 역시 일정 수준이 보장되죠.” 노 대표는 특유의 유연한 추출법으로 러시타임에 대응한다. 푸어오버 방식으로 추출하거나 클레버, 모카마스터를 사용하는 등 수단과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

 

 

이 메뉴는 판매촉진을 위한 일종의 마케팅 수단이지만, 긍정적인 요소가 많은 편이다. 핸드드립이라는 형태는 낯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커피는 경험이 중요한데, 높은 가격이 견고한 장벽이 되어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된다. 단돈 2,500원은 이러한 가격저항을 낮춰준다. 부담스럽지 않게 드립커피라는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커피를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격 혜택은 ‘오늘’만 해당된다는 부분이 매력적이다. ‘내일’이면 같은 커피라도 제값을 주고 마셔야한다는 것이, 이 메뉴의 ‘함정’인 셈이다. 입맛에 맞는다면 결국 다시 찾기 마련이다. 재구매가 메뉴의 목적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선택은 아메리카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 노 대표는 ‘라이언스커피’를 ‘판매자 중심’의 메뉴라고 설명한다.

 

커핑에서 필요한 것은 결국 ‘기준’

노 대표의 유연한 사고방식은 커핑으로도 이어진다. “커핑이냐 테이스팅이냐 저징이냐에 따라서 목적은 달라질 수 있지만, 결국 필요한 것은 ‘기준’이에요.” 일정한 프로토콜을 정해서 자신 안의 기준을 만들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커핑이 될 수 있다. 커핑을 할 때는 참석한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한 기준이 존재한다. 커핑은 그러한 기준을 통해 느껴진 감각을 공감하는 행위이다.

커핑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기준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는 의미이고, 감각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 소통하는 데에 있어 유리하다. 특히 커피의 품질을 평가해야 할 때 그룹 내에서 합의점을 찾는 데에 주효하다. “한 번은 볼리비아 커피를 커핑한 적이 있었는데, 다들 굉장히 좋다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별로였어요.” 그룹원들은 ‘이 포인트가 좋기 때문에 점수가 높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약간의 논쟁은 있었지만 끝내는 그룹의 기준을 이해하게 되면서 문제는 해결됐다. 이를 테면 우리에게 익숙한 인삼향은 서양에서는 포테이토라고도 하는데, 경우에 따라 긍정과 부정으로 다르게 받아들인다. 커피의 전반적인 뉘앙스를 보면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뉘앙스에 대한 해석을 충분히 논의 한 뒤, 그룹의 기준을 합의하는 것이다. 향미의 캘리브레이션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커피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 커핑은 무조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핑의 영역을 커피인과 비커피인으로 분명하게 나누려는 생각은 없다. “매장에서 퍼블릭 커핑을 하고 있을 때 손님이 오시면, 함께 참여하라고 권하는 편이에요.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커핑은 캐주얼하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굳이 숟가락으로 떠먹어야지만 커핑이 아니다. 그냥 마시는 것만으로도 커핑이고, 이러한 커핑이 필요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대상이다.

노 대표의 관심은 커피를 넘어 다른 식음료의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커핑이 커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봐요. 맥주나 티, 와인에서도 방법만 다를 뿐이지 비슷한 개념이 있어요.” 커핑은 먹고 마시면서 느끼는 일이고, 대상이 다양해질수록 경험치는 늘어난다. “예전에는 맥주를 잘 안마셨는데, 요즘은 자주 마셔요. 맥주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향미가 커피에서 느껴지던 것과 비슷해서, 잘 넘어가더라구요.” 이러한 공통분모를 통해 향미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빠르게 넓혀갈 수 있다.

 

 

라이언스커피는 지난 4월 숙대입구에 2호점을 오픈했다. 1호점이 공장과 교육 중심의 콘셉트였다면, 2호점은 철저히 소비자를 위한 ‘카페’에 초점을 맞췄다. 원두제조업 보다도 매장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 반영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소비자와 만나는 공간인 만큼 그라인더와 로스터기 등 눈에 보이는 기기들도 신경 써서 준비했다. 여기에 평소 좋아했던 맥주도 들여놨다. 수제맥주 제조사 크래프트원의 ‘브루원’으로, 화사한 꽃 향과 풍부한 단맛이 특징이다.

한편 노 대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에도 안티오키아에 다녀왔지만, 오는 하반기에 다시 한 번 콜롬비아를 다녀올 계획이다. 아직 우리에게 소개되지 않은, 콜롬비아만의 특별한 매력을 담아낸 커피를 본격적으로 찾아내기 위해서다. “콜롬비아는 커피 생산국으로 굉장히 유명하지만 의외로 꼬집어서 설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없는 편이에요. 그나마 ‘마일드’라는 표현이 유명한데, 사실 마케팅을 위해 만들어진 표현에 불과해서 콜롬비아 커피를 설명하기는 부족하죠.” 두 번의 방문을 통해 노 대표는 콜롬비아 커피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또한 그동안 쌓은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 이것은 본격적인 커피헌터로서의 행보이기도 하다. 그동안 노 대표는 커피인들과 뜻을 모아 COE 경매에 참가해 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8개국 경매에 참가해 모두 낙찰 받았고, 지난 안티오키아에선 커피농장과 종합을 방문해 직접 생두를 골라 구매하기도 했다. 생두 수입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어느 정도 쌓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제는 그만의 안목으로 커피를 찾아낼 차례이다. 올 하반기, 라이언스커피가 전해 줄 새로운 소식들을 기대해 봐도 좋겠다.

 

| 지난 해 안티오키아에서 구매한 커피를 커퍼스 8개 센터에서 판매했다. 공동 마케팅을 위해 제작한 스티커

 

커퍼스 센터 취재 건으로 2016년 4월 온라인커피매거진 블랙워터이슈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내용 중 현재 라이언스 커피 로스터스 운영 내용과 상이한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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