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편에 이어서 이번에는 전시회에 등장했던 몇 가지 제품을 통해 일본 커피산업의 흐름을 살펴봅니다.

드리퍼와 드리퍼 필터의 다변화

이번 2017SCAJ에선 일본 커피인들이 브루잉 커피에 대한 애착이 상당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특히 필터 재질이 종이가 아닌 세라믹이나 메탈 같은 다른 재질로 만들어져 눈길을 모았는데요. 재질에 따라 각각의 특징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일회용이 아닌 다회용이라는 점에서 필터 비용과 환경오염의 부담을 낮추는 데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라믹 필터는 내부가 다공질로 이뤄져 있어서 특별한 추출구가 없더라도 추출된 커피가 잘 흘러내렸습니다. 추출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에 속하는 하리오 V60와 비교했을 때와 비슷하거나, 좀 더 빠르게 추출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세라믹 필터는 디자인이 조금씩 달랐는데, 일부 제품은 드리퍼 없이 세라믹 필터만으로도 추출이 가능했습니다. 제품 자체가 필터이자 드리퍼였던 셈이죠.

아쉽게도 관능에 대한 부분은 비교해볼만한 대상이 없었는데요. 다만, 메탈 필터를 사용할 때나 프렌치프레스 추출했을 때와 유사한 뉘앙스가 느껴졌습니다. 세라믹이라는 재질은 플라스틱 등에 비해 표면 내구성에선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공질 등의 특징 때문에 세척이나 관리에 있어선 특별한 관리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킨토(Kinto)는 필터가 아닌 드리퍼를 선보였습니다. 하리오 V60와 유사한 형태의 드리퍼를 비롯해 구불거리는 림(Rim)이 인상적인 드리퍼도 선보였습니다. 심플하면서도 유려한, 킨토 특유의 디자인이 돋보이는 제품이었습니다. 순금 필터로 유명한 코레스(Cores)의 메탈 필터도 눈에 띄었습니다.

 

| 그린 브루잉(Green Brewing)의 차 드리퍼

 

드리퍼에 커피가 아닌 티를 브루잉하는 제품도 있었습니다. 일정 시간 차를 우려내야 한다는 개념에서 본다면 상당히 파격적으로 보입니다. 기존의 차와는 다른 접근법으로 새로운 뉘앙스를 찾아가려는 시도처럼 보였습니다. 기존 추출법 보다 추출 시간이 극단적으로 짧기 때문에 다른 재료와의 블렌딩이나 차의 선택에 대한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유추해봅니다.

드리퍼 관련 제품의 다양한 변주가 ‘일본식 커피’라는 고유의 캐릭터를 더욱 다듬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본인들이 쌓아온 것을 새롭게 조명해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혁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캐릭터가 선명하고 풍부한 향미를 가진 스페셜티커피라면, 큰 차이를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용량 브루잉 머신

브루잉 커피, 특히 대용량 추출이 가능한 기구들을 여럿 볼 수 있었는데요. 먼저 사이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한 추출기구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대중화된 기구 중 하나입니다. 사이폰은 다량의 커피를 빠르게 추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전자동 커피메이커와는 다른 뉘앙스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추출과정이 단순해 추출 레시피만 주의한다면 결과물의 변수가 적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죠.

 

| 보덤사의 대형 사이폰 기구

 

보통 사이폰은 1~2잔 분량의 커피가 추출되는 반면, 이번 SCAJ에서 보덤(Bodum)사가 선보인 대용량 사이폰은 최대 1L까지 추출이 가능합니다. 용량이 늘어나면서 실험실 도구처럼 날렵하고 날카로운 디자인에서 단순하고 넉넉한 디자인으로 변경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알파도민쉐의 사이트. 사이폰을 응용한 진공 추출 방식은 스팀펑크와 유사합니다

 

다목적 브루잉 머신 스팀펑크(Steam punk)로 유명한 알파도민쉐(Alpha Dominche)에서도 대용량 브루잉 커피 머신, 사이트(Sight)를 선보였습니다. 사실 이 제품은 지난 2016SCAA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는데요. 약 4L에 달하는 대용량의 커피를 한 번에 추출할 수 있습니다. 이때 추출 레시피는 스팀펑크처럼 프로파일링이 가능해, 커피에 따른 맞춤 레시피 설정으로 보다 나은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 아메리칸 프레스, 뜨거운 물을 담은 뒤 커피가루가 담긴 챔버를 내리면서 커피 추출이 이뤄집니다

 

대용량은 아니지만 조금 특별한 형태의 브루잉 기구도 선보였습니다. 에어로프레스 또는 프렌치프레스와 유사한 형태의 아메리칸 프레스(American Press)입니다. 전반적인 생김새는 프렌치프레스와 거의 같지만, 내부에는 에어로프레스처럼 챔버가 달려 있는데, 이곳에 커피가루를 담게 됩니다. 커피 가루의 굵기나 추출 방법 등을 조절해 프렌치프레스나 에어로프레스 추출 방식을 유사하게 재현할 수 있습니다. 커피에 따라 추출 레시피를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겠죠.

 

자동 브루잉 머신

| 에스프레소류 커피가 강세인 국내에서 자동 브루잉 머신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에서 다룬 머신이 침출 방식이었다면 우리에게 친숙한 투과 방식으로 추출하는 자동 머신도 등장했습니다. 대용량 브루잉 머신을 제작하는 커티스(Curtis)에서 선보인 세라핌(Seraphim)은 언더카운터 방식의 브루어입니다. 독특한 생김새부터 이목을 끌었는데요. 콘트롤 패널에서 모든 조작이 이뤄지고, 브루잉 레시피를 프로파일링할 수 있습니다. 제조사에 따르면 44개의 레시피를 저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추출 과정을 디지털 방식으로 수치화, 계량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 칼리타의 버블랩. 위 사진은 디스펜서(Dispenser)로서, 뜨거운 물을 비롯해 폼 밀크(Foam Milk)도 자동으로 만들어줍니다.

 

칼리타(Kalita)에서 선보인 버블랩(Bubble Lab)은 언더카운터 시스템을 극대화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카운터 아래에 숨겨져 있다가 작동 시 위로 솟아오르기 때문인데요. 긴 관이 솟아오르면서 헤드 부분이 틀어지는 게 잠망경을 연상시킵니다. 헤드가 좌우로 움직이고, 헤드 안에 있는 분사 장치가 상하로 움직이면서 원형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로 물을 주입할 수 있습니다. 칼리타에서 자동 브루잉 머신을 시도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 리치선의 자동 브루잉 머신

 

소규모 브루잉 머신도 선보였습니다. 리치선(Rich Sun)에서는 선보인 자동 브루잉 머신은 세 개의 물줄기가 회전하면서 원형으로 물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하게 됩니다. 이때 회전 속도와 추출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추출 레시피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완전 자동시스템이 아니라서 커피를 드리퍼에 담는 것 외에도 상부에 뜨거운 물을 따로 넣어줘야 한다는 점은 번거롭게 보였습니다. 단순하게 물을 주입하는 일반 커피메이커에 비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용량, 자동 브루잉 커피 머신이 등장한 것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무엇보다 일본 커피업계가 자동화된 시스템에서 대용량으로 추출되는 커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도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일본 시장을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기기의 디테일한 조작성이 세밀한 일본식 드립과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 다른 관점은 같은 드리퍼라도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 등 나라마다 그 기능을 해석하는 관점이 다른 만큼, 같은 기기라도 일본식 세팅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칼리타에서 이러한 기기를 도입했다는 점은, 자사의 제품과 시너지 효과뿐만 아니라 자동 브루잉 머신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예측해봅니다. 아직 기기의 완성도나 조작의 신뢰성은 발전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이러한 변화는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
*